The commentator Mika
at Occidentalism showed some artcles in Korea about the present situation of ex-comfort women.
I'll translate some part of it.I translated from Japanese which is mechanically translated from Korean.But I think you can see the basic idea.
I'd be happy if someody gave us an accurate translation of the text.
1991년, 정부는 전국 읍면동에 공문을 보내 “위안부에 대해서는 비밀을 보장해 줄테니 창피해 하지 말고, 신고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고, 이에 따라 신고자는 총 2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125명 정도이며, 이 125명 중 진짜 “일본군위안부”라고 자기들끼리 확인한 노인들은 33명이다. 이 모임은 약칭 “무궁화회 할머니회”로 불린다. 이 할머니 대표가 바로 일본 대법원에서 진짜로 확인된 ´심미자´(82세) 할머니이며, 2005.4.13. 오전과 오후에 걸쳐, 필자가 여러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1991年,政府は全国邑面洞に公文書を送って “慰安婦に対しては秘密を保障してくれるから恥ずかしがるのしないで,届けなさい”と言う主旨の公文書を送ったし,これによって 申告者は総 200人位だったことと知られている.これらの中で今残っている人々は 125人位であり,この 125人の中で本当 “日本軍隊慰安婦”と自分たちどうし確認した年寄りたちは 33人だ.この集まりは略称 “ムクゲ回お婆さん回”と呼ばれる.このお婆さん代表がすぐ日本最高裁判所で本気に確認された ′審美者′(82歳) お婆さんであり,2005.4.13.午前と午後にかけて,筆者が多くの時間にわたってインタビューをした.
In 1991,the government announced an official document to the effect that the privacy will be kept, so don't be ashamed to report you were ex-comfort women.About 200 people reported they had been comfort women, and those still alive now are about 125 people.Out of this 125 people, only 33 people are cofirmed (by each other or us?) as the real "Japanese army excomfort women"....
이 곳은 관광하러 한국에 온 일본인들의 관광 코스로 되어 있고, 국내외로부터 성금이 답지된다고 한다. 먼저 나눔의 집을 지어달라 호소했던 할머니들은 운영자측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어 나갔고, 현재 홈페이지에는 10명의 위안부 얼굴들이 나타나 있지만 이들 중 약 5명 정도는 중국에서 온 할머니들이라 한다. 이 중국 할머니들 중 몇 명씩이 하루에 3만원을 받고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 집회에 나간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こちらは観光しに韓国へ来た日本人たちの観光コースになっていて,国内外からまばらさがダブジドエンダで言う.先に分けることの家を建ててくれと言って訴 えたお婆さんたちは運営者側に対して多い不満があって行ったし,現在ホームページには 10人の慰安婦顔たちが現われているがこれらの中で約 5人位は中国から来たお婆さんたちと言う.この中国お婆さんたちの中で何名ずつが一日に 3万ウォンをもらって水曜日日本大使館前集会に出るとお婆さんは言う.
..........You can see the face of 10 ex-comfort women on their home-page.Out of these women,about five people are from china.And out of this old ladies,some participate in the assembly in front of Japanese Embassy, receiving 30,000 won a day
인터뷰에서 심 할머니가 거론한 두가지 큰 불만사항은 두가지.
インタビューで心お婆さんが取り上げた二つ大きい不満事項は二つ.
Two biggest complaints from ex-comort women in the interview are as follows.
1) 위안부봉사단체인 두 기관들은 위안부를 이용하여 국내외로부터 모금도 하고, 자신들의 명예를 올리기 위해 일하며, 모금한 돈을 나누어 주지도 않는다.
1)慰安婦奉仕団体である二人の機関たちは慰安婦を利用して国内外から募金もして,自分たちの名誉をあげるために働いて,募金したお金を配らない.
Two volounteer organizations for ex-comfort woman are rasing donation from inside and outside the country;They work for fame,but they do not distribute the money to ex-comfort women.
2) 몇 명 안 되는 할머니들을 앵벌이로 삼아 국제 망신을 시키고 다닌다. 우리는 돈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예다. 우리를 이용하여 국제 모금을 하는 것은 우리를 두 번 모욕 주는 행위다.
2)何人にならないaお婆さんたちをエングボルイにして国際恥さらしをさせて通う.私たちはお金を望まない.私たちが望むことは名誉だ.私たちを利用して国際募金をすることは私たちを二度侮辱与える行為だ.
..... We do not want money.All we want to is to resotore our dignity.Raising donation, exploiting us, is double insults to us.
또 우리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툭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세워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위안부할머니에게 해준 일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일본인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과 소송문제, 또 장례식 등까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펴왔음을 역설적으로 전했다.
また我が政府と市民団体などがともすると慰安婦お婆さんたちを立てて日本を批判して日本に賠償することを要求しているがいざ政府と市民団体などが慰安婦お 婆さんにしてくれた仕事があまりないと指摘してむしろ日本人たちが慰安婦お婆さんたちの健康と訴訟問題,また葬式などまで細細しい部分に対して持続的な関 心と面倒を広げたことを逆説的に伝えた.
The government and NGO tend to use ex-comfort women to criticize Japan and to demand conpensation,but they did little to help us. Rather, Japanese people helped ex-comfor t women to receive medical check-ups,to file suit , carry out the funeral and other minor things, and they have showed continuous concern and served us well.
이와 관련 2004년 위안부 할머니중 한명인 박봉순할머니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장에 한국인은 거의 없고 일본인들이 몇명 모여서 장례를 치뤘는데 화장비도 일본인들이 내고 유골을 운반할 때도 무궁화회 회장인 심미자 할머니가 먼길을 걸으면서 홀로 운반해야 했다는 가슴 아픈 일화를 소개했다. 봉사단체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면서 위안부봉사단체의 허구성을 통열히 비판했다.
これと関連 2004年慰安婦お婆さん中一人であるバックボングスンハルモニが死亡した時斉場に韓国人はほとんどいなくて日本人たちが何人集まって葬礼を行ったが化粧 費も日本人たちが内告遺骨を運ぶ時もムクゲ回会長である審美者お婆さんが長道を歩きながら一人きり運ば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という胸が痛むエピソードを紹 介した.奉仕団体関係者は見えなかったと慰安婦奉仕団体の虚構性をトングヨルヒ批判した.
When a one of the ex-comfort women passed away, there were few Koreans in the funeral but the Japanese gathered and carried out the funeral.....Nobody from the organization came to the funeral...
언론이나 TV에 나오는 할머니중 일부는 일본에서는 진짜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로 인해 한국이 불신을 받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우려가 있음도 지적했다.
言論や TVに出るお婆さん中一部は日本では本当ではないと思うと言いながらこれにより韓国が不信を受けて国際的な恥をかく恐れがあるのも指摘した.
She pointed out that Korea might disgrace herself,saying that some of these old ladies are not considered as real by Japanese.
지만원
ジーマン院
The head of the house for the former comfort women resigned because of sexural harrasment
(2001.2.19 朝鮮日報 社会)
『ナヌムの家』慧眞師「女子職員と性関係」/園長職を辞任
日本軍従軍慰安婦ハルモニたちが集い住む、京畿道広州の『ナヌムの家』園長であ
る慧眞(ヘジン 36・俗名ぺ・ヨンギル)師が、女子職員とのセックススキャンダル
が取りざたされる中で17日に記者会見を開き、「園長職から退き、僧籍を離れる」と
表明した。
慧眞師の辞任は、同団体に勤務して昨年の11月に解雇された呉某(女・43)氏が、
最近になって韓国性暴力相談所に「慧員が園長という地位を利用して、97年2月から
98年の5月までひと月に2~3回ずつ性関係を強要した」と告発したことによるもので
ある。
慧眞師は記者会見で「困難な状況下で共に仕事に励んでいて気持ちを抑えることが
できず、性関係を続けてしまった」とし、「暴力や強圧はなかったが、騒動が続けば
慰安婦被害補償運動を巻き添えにしかねないと思い、身を引くことにした」と語っ
た。慧眞師を告発した呉氏は、昨年の10月に同団体で総務を担当していた自分の同居
人である張某氏(男・4 2)が『会計処理が不透明で管轄官庁ともめた」という理由
で解摩された後、慧眞師や他の職員との間で感情のもつれが生じ、解雇された。
一方で『ナヌムの家』側はこの日、内部騒動などを理由に慰女婦ハルモニたちの絵
画や遺品、各種資料を展示している『日本軍慰安婦歴史館』をしばらくの間休館する
ことに決定した。/金秀態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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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19-18:56 Digital Chosun japan@chosun.com)
日本軍従軍慰安婦歴史館、長期休館へ
元従軍慰安婦が共同生活している京畿(キョンギ)道・広州(クァンジュ)にある「ナ
ヌムの家」の院長兼僧侶、ヘジン氏(36)のセクハラ事件による内部葛藤で、ここにあ
る世界唯一の「日本軍従軍慰安婦歴史館」が長期休館に入り、韓日両国民が落胆してい
る。
98年8月完工したこの歴史館は、元従軍慰安婦女性が描いた絵や遺品、証言などを
基に再構成された慰安所の模型や肉声の証言テープなどを展示しており、昨年一年間
の訪問客約9000人のうち3分の1以上を日本人が占めるなど日本人にとっては「懺悔の
場所」として有名だ。
19日午前、ナヌムの家。日本人ボランティアの米倉まゆみさん(27)は歴史館の参観
を予約していた日本の市民団体や高校などへの休館通知に追われていた。米倉さんは
語学研修で韓国を訪れたが、99年2月からは住み込みで通訳や案内の仕事をしてき
た。
「休館の理由を聞いてくる国際電話が殺到しているが、何と答えればいいのかわか
らなくて困っています。日本の右翼が‘元従軍慰安婦女性の被害賠償運動の先頭に立
っていた僧侶がセクハラ事件で退いた’と主張すれば、日本政府に公式謝罪を要求し
てきたこれまでの苦労が水の泡になってしまうのでは…」
米倉さんは「今月は日本最大の戦争研究所、‘戦争資料センター’所属の学者や市
民団体の関係者が予約していた」と残念がっていた。ナヌムの家の総務、アン・シン
グォン(41)さんは「昨年、歴史館を訪問した東京・正則高校の生徒350人が来月また来
たいと言っていた。歴史館が日本人教育の場として定着していたのに」と、深いため
息をついた。/キム・スヘ記者、キム・ミング記者朝鮮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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