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03, 2006

Korean new history textbook

Some of the content of new text by Korean new right is being revealed.
According to Hankyoreh, and oh my news The text in question reads, for instance,
Liberation came suddenly(unintentionally), preparing for Japanese defeat in WWⅡ,
some Korean people like 呂運亨 organized the Death-defying corps, but they were exceptional....
The Korean leaders of independent movement suffered from sectionalism.....
it is a popular view that rice was exploited but the truth is that rice was exported to Japan at high price ,and the Korean landlord and farmers benefited greatly from it.

There is no document that suggest comfort women was forcibly abducted.

Wow, the truth is finally coming out!
But sadly, as I posted the other day, it is about to be concealed by violence.

One Korean person comments on this article " the authors of the new textbook studied in USA, we can not tell the difference between the authors and American Imperialists, for that matter, the authors and Japanese extreme rightists are no different. "


via 木村幽閉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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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교과서,독립운동은 ‘분파주의’, 좌파도 ‘부정적’묘사
‘뉴라이트 교과서’ 분석 ② 친일파 정당화까지


한승동 기자

교과서포럼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시안 제4장 ‘국민국가의 건설’은 “해방은 느닷없이 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일본의 패망에 대비하려고 여운형이 조직한 ‘건국동맹’ 같은 비밀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움직임이었다.” 글이 주로 ‘국내’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국외’ 부분을 따로 조명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시안을 보면 광복은 외세의 선물인 듯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건국준비위원회 등의 활동은 물론이고 만주와 중국 화북지역 등을 중심으로 적지않은 무장대원들이 단독조직 또는 동북항일연군 등 중국공산당 등과의 연계형태로 치열한 항일투쟁을 벌였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의 주인공 김산(장지락)의 일대기만 봐도 한민족 항일투쟁의 폭과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시안은 식민지 항일무장투쟁의 핵인 사회·공산주의계열을 거의 빼버림으로써 민족 전체의 독립역량을 부정하는 꼴이 됐다.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이라는 소항목이 설정돼 있으나 홍범도 최진동 김좌진 정도만 언급됐다.

좌파계열이 단 한번 언급된 곳이 있는데 매우 부정적으로 그렸다. “당시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분파주의로 상호 갈등과 분열로 시달렸다. 중국에서는 김원봉이 임시정부에 대항하는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미국에서도 한길수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이 이승만을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비해 이승만은 ‘이승만의 제네바회의 외교’라는 독립항목을 둘 정도로 부각시켰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다른 그룹을) 비판한 건 사실이겠지만, 그걸 분파주의로 모는 건 일제가 오도한 조선 당파성론을 연상시킨다. 분파주의로 치자면 이승만쪽이 더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한국 우파의 본산이라 할 임시정부 백범 쪽도 미국 전략정보국(OSS. 중앙정보국의 전신)과 손잡고 국내 진공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백범을 미군정은 정작 점령 뒤 버렸다. 아무 준비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준비세력들이 강제퇴장당했다.

‘시장경제 기반의 구축’, ‘대외관계와 무역의 성장’ 등 일제시대 상황을 서술한 항목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영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쌀을 수탈당해 가난해졌다는 속설도 있으나 이는 잘못되었다. …쌀은 가격이 비싼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이를 통해 조선의 지주와 농민은 수입증대라는 혜택을 입었다.”

광복 이후 기술부분에 대해서는 결국 “친일파의 입지를 넓히고 미군의 한반도 개입 명분을 주는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 전문가는 지적했다.
시안은 5·16을 “당시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집단의 등장 계기가 된 사건”이라며 ‘혁명’으로 규정한 연장선상에서 박정희 일인장기집권체제인 유신독재도 긍정한다. “행정적 차원에서는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였으며 “조국 근대화작업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장치였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은 한일협정, 베트남전 파병에 그대로 이어진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었고 “한국경제의 대외 신용도가 크게 상승돼 외국자본을 안정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한일협정에선 대일 청구권 문제를 호도했고 독도문제를 얼버무려 오늘날의 화근이 되게 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제대로 거론하지도 못했다.

이미 평가가 끝난 12·12 신군부 쿠데타도 12·12사건으로 얼버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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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마포구 신수동 뉴라이트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안병직(70·서울대 명예교수)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지난달 30일 교과서포럼(상임대표 박효종)의 대안교과서 토론회에서 4·19혁명동지회원들에게 멱살이 잡히는 수모를 겪었지만,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안 교수는 우선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폭력사태'에 먼저 유감을 표시한 안 교수는 "사법적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라 "용서해 주면 (폭력으로 문제해결하려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안 교수는 또 "개인적인 견해를 교과서포럼의 견해처럼 밝혀서 오해가 촉발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4·19혁명이나 5·16군사쿠데타에 관한 정의가 교과서포럼 내부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았는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얘기다. 안 교수는 최근 발간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가 아직 '초안'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과 한미동맹으로 남한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박정희 군사정권의 경제발전 노력에 대해 확고한 소신을 밝혔다.

"왜놈이 무조건 강제로 잡아갔기 때문에 위안부 됐다는 건 거짓말"

우선 안 교수는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가 일제 강점을 정당화한 일본의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주장과 비슷하다는 지적에 "초안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또 "일제시대 토지수탈은 없었다"며 "나를 친일파라고 하고, 새역모와 생각이 같다고 비판해도 (일제의 토지수탈이 있었다는) 그런 사실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관한 역사적 평가일 뿐 일제 강점 미화는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인의 제도개혁을 근대적 제도에 가까운 개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일본인이 조선인을 위해서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분명히 했다.

종군위안부를 빼거나 항일무장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축소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현재 역사의 중심축에 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빠뜨릴 수는 없다"며 어떤 형태로든 대안교과서에 실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안 교수는 일본군위안부에 관해 "다 가난해서 나온 것"이라며 "부모가 가난하지 않으면 왜 자기 딸을 팔아먹겠느냐"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그런(가난)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왜놈들이 무조건 강제로 잡아갔기 때문에 위안부가 됐다고 한다"며 이런 사실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뉴라이트 성명서 화나... 주먹 휘두르고 정치적 봉합하려 했다"



▲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지난번 토론회 때의 폭력사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폭력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지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사법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용서해주면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한국에 만연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괘씸하다거나, 분하다거나 이런 차원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 뉴라이트 네트워크에서 그 사건 이후로 성명을 냈다. 뉴라이트 내부에서도 5·16을 혁명으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등 이의가 있는데.
"성명을 읽고 대단히 당황했고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학술 문제는 학술로써 해결해야지 정치적 성명으로 해결하려 했다. 내가 화를 냈다. 이게 뭐하자는 것이냐고. 교과서 초안에 5·16은 혁명이고, 4·19는 학생운동이라고 쓴 것은 정치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떠나 학술적 견해에 불과하다. 학자들이 모여서 옳고 그르다는 토론을 해야 결론 나는 것인데 주먹을 휘두르고 정치적으로 봉합하려 했다. 그것은 결론이 아니다."

-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가 일본 우익집단인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와 관점이 비슷하다는 비판이 있다. 일제시대를 미화하고, 정당화한 것 아니냐.
"그런 비판은 현재 제시된 대안교과서 초안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초안을 읽어보면 어떻게 다른지 알 것이다."

- '조선총독부의 토지수탈이 사실상 없었다'는 등 내용이 그와 같은 듯한데.
"일본의 새역모가 (자기들 교과서에 토지수탈을) 어떻게 썼는지를 모른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에 전국의 토지조사사업 문서를 거의 다 조사했다. 토지조사부, 분쟁지 서류, 토지측량관계 서류, 지적도를 종합 검토한 결과 토지약탈은 없었다는 게 우리의 객관적 결론이다.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다만, 단 한 건의 토지수탈도 없었냐는 것은 알 수 없다."

- 조선총독부로부터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로 넘어간 토지는 수탈된 것이 아닌가.
"일본 총독부가 소유권이 불분명한 궁장토를 국유지로해서 동척에 많이 불하했다. 그 사실은 있다. 하지만 (조선 땅의) 10%도 안 됐다. 조선후기에는 궁장토 양이 많지 않았다. (토지수탈이라고 볼 수 있는)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과의 토지분쟁은 0.1%도 되지 않았다."

- 대안교과서는 토지조사사업을 근대적 토지제도와 조세제도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다른 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가 일본인을 이주시켜 식민지를 영구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양 시각이 다 성립할 수 있지만, 보다 중요한 목적이 무엇이었느냐가 중요하다. 일본은 두 가지 목적을 다 시도했다. 제일 중요한 목적은 근대적 지세제도를 만들어 조세수입을 확보하고 식민지 통치를 위한 비용을 창출하고자 한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국유지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확보해 일본인의 이주를 촉진시킨다는 것이었지만 실현이 안 됐다.

내가 보기에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이 끝나기 전에 이주사업은 포기했다. 그런데 (이주사업을) 토지조사사업의 제1차 목적이었다고 하면 객관적 사실에 안 맞는 거다. 또 그것 때문에 조선인들이 토지를 다 상실했다면 거짓말이다. 역사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나를 친일파라고 하고, 새역모와 생각이 같다고 해도 그런 사실은 수용할 수 없다. (토지수탈이 없었다는 것을) 새역모가 주장한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 있나."

- 결과론적으로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에 근대적 조세제도, 토지제도가 확립됐다고 보는 것 같다. 문제는 일본의 목적인데, 이를 조선을 돕기 위한 것으로 봐도 되는가.
"서울대 낙성대연구실에서도 토지조사사업이 우리나라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를 따진 것이지, 일본인들이 시혜적으로 조선인을 돕기 위해서 했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일본인의 제도개혁을 근대적 제도에 가까운 개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이 조선인을 위해서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금 국사학계의 일반적인 질문이 (근대적 제도개혁을) 조선인을 위해서 했느냐는 것인데, 역사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수준 이하의 질문이다."

"근대적 제도개혁, 조선인 위해 했다는 건 말 안돼"



▲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국민감정은 일제 식민지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한일합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종군위안부 문제를 빠뜨리거나 항일무장투쟁을 축소해서 실은 교과서로 후세에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있나.
"내가 처음부터 출발점에 역사는 현재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했고, 우리 지향 목표는 선진화라고 했다. 그런데 선진화만 중요하냐. 국민들의 자존심도 얼마든지 중요하다. 우리가 선진화한다고 해도 독립운동이나 위안부의 아픔은 들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걸 역사의 중심축에 놓아서는 안 된다. 또 어떻게 하면 위안부에게도 도움이 되고 한일관계를 가져가는데 유리한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된다. 쓸데없는 반일감정만 일으켜서는 우리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 나는 과거의 위안부가 안타깝거든 현재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더 노력하라고 말했다."

- 현재의 위안부라면 성매매 여성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뿌리는 다 마찬가지다. 다 가난해서 나온 것이다. 부모들이 가난하지 않으면 왜 자기 딸을 팔아먹겠나.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왜놈들이 무조건 강제로 잡아갔기 때문에 위안부가 됐다고,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안 해버렸다. 거짓말이기 때문에. 내가 한국사에 대해서 죄를 짓고 있는 거다. 현재 OO동이나 OO동에 있는 위안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그들이 전부 납치돼서 온 것이냐? 우리 연구의 목적은 우리의 아픈 점을 연구해가지고 그걸 없애는 것 아니냐."

- 성매매와 다른 문제 아닌가. 위안부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것 자체는 역사로 볼 수 있잖느냐.
"실제 (일제시대에) 강제동원은 많이 있었다. 남성의 경우 징용이나 징병, 여성은 정신대가 강제동원됐다. 하지만 위안부에 관해서, 강제를 했느냐는 (아직 객관적으로)모른다. 강제했다는 자료를 일본과 한국이고 어느 곳에서도 내놓은 것은 없다. 위안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증언뿐이다.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증언을 가지고 역사적인 자료라고 안 한다.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위안부 강제동원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 선진화를 역사의 중심축에 놓는다고 해도, 위안부 문제나 독립운동을 역사서술에서 빠뜨릴 수 있나. 이번 대안교과서에서는 빠졌는데.
"빠뜨릴 수 없다. 한두 줄이라도 꼭 넣어야 한다. 대안교과서는 위안부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고 지금은 골격만 앙상하게 나온 상태다. 역사의 기본 흐름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관해 초안만 작업해 놓은 건데, 왜 모든 것을 다 안 다루느냐고 하면 안 된다." ohmynews/2006-12-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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