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18, 2007

Comfort women in Korea now.

If the Koreans are so outraged by “comfort women” why is it that not a month goes by that we aren’t hearing about some Korean prostitution ring being busted in some corner of the world far removed from Korea. If Koreans don’t give a damn about “comfort women” today, why should anyone believe that Koreans cared about “comfort women”, during the Second World War. Here’s a recent raid on a Korean prostitution ring.

RCMP raided the heavily fortified Williams Road home - the windows were barred and the doors were reinforced with steel - Feb. 8 and arrested 14 people: Five patrons, two male employees and seven Korean prostitutes.

See Police raid pair of bordellos

Barred windows and doors reinforced with steel? High crime neighborhood? I doubt it. Let’s face it. Korea has always had a sizeable number of men and women who wouldn’t hesitate to exploit their fellow Koreans for a shot at the good life.

Lest you think this sort of behavior is limited to South Koreans, think again. Koreans in China are just as likely to sell their fellow Koreans for easy money.

An entire industry of trafficking women from North Korea into China, where they are sold to “husbands” who hold them with physical and sexual assaults as well as demands they perform backbreaking labor, has been documented by Radio Free Asia.

The traffickers mostly are ethnic Korean Chinese who act as scouts, distributors, brokers or transporters of the “merchandise.” They identify victims and lure them into crossing into China, where the victims are matched with potential buyers, the report said.

So what is it like being a slave to a Chinese man?

“He hits me every day, for any trivial reason. It’s not that I want to live here, but I have nowhere else to go,” trafficking victim Hoh Kyung-Soon told RFA. “I’ve tried escaping twice. I was caught and beaten to a pulp.”

See Report: North Koreans enslaved in China

Sex slaves, prostitutes, comfort women, whatever you want to call these women who get exploited, the Koreans are just as eager now to exploit their women as they ever have. You don’t need King Sae Jong to figure that out.
Posted on 18-Feb-07 at 4:56 pm | Permalinkbad_moon_rising at occidentalism


Statistics of prostitution
The Ministry of Justice, US Year 2005
Korea: 23.5%, Thai: 11.7%, Peru: 10%, Mexico: 9.6%

The article mentions that prostitutes of Korean Chinese existed, either. They must be counted as Chinese because of their Nationality.
It means total percentage of “Korean” must be bigger than 23.5%.
jion 999


SEPTEMBER 25, 2006 donga.com english


When I heard the rumor by chance that young Korean women are held in custody in Albuquerque, what I thought of at first was 밯here is Albuquerque?�However, the curiosity why Korean women are locked up in a small city unknown to us in New Mexico was soon satisfied.


밢peration Cold Comport,�which was supposed to crack down on Korean sex trade shops, were launched on August 15 by 1,000 armed policemen in eastern cities including Washington D.C. and New York. It is said that during the operation, arrested women were sent into custody. Among 70 Korean women arrested, 15 out of 19 women who failed to be released on bail are in custody.


Albuquerque is a city of 500,000, which is built in the middle of a vast wilderness in New Mexico. The Detention and Correction Center that I visited on September 18 was in the middle of its downtown area unlike my imagination. However, security and guard were heavy, just like other correctional facilities. On the fourth floor of the building, seemingly the tallest one in the city, were Korean women in custody.


밯ith my hands tied and shackled, I was taken here by flight for 23 hours. They didn뭪 care even when I said I had a hygienic emergency.�


Korean women who came out to a hall after every 3-4 were locked up in a room, poured out complaints and pleas. There were so many complaints that Kwon Tae-myun, consulate general in Washington D.C. couldn뭪 even answer.


밢ut of the blue, policemen with guns raided us and we were dragged out without wearing proper clothes. We were locked up in some kind of a hotel for a week and were sent here. We couldn뭪 bring anything. They took our money.�


They had similar stories about how they came here. Then why did they come to this faraway country and end up in the sex trade business?


밒t is hard to make money when you are older than 30 in Korea. But, I heard that Asian women뭩 age is hard to recognize in the U.S. and that one can earn 20,000-30,000 dollars easily.�


Mrs. A, 35, took a flight to Mexico eight months ago after listening to one of her acquaintances. She was guided to Tijuana, Mexico which borders San Diego in California and after staying at a tourist home for a couple of days, she crossed the border hidden in a car with a back seat removed. It cost her $10,000 to cross the border. There were a lot of ethnic Korean women who came from Yongbyon, China at the touris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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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아메리칸 드림의 명암]‘성매매 한국여성’ 15명 인터뷰


“앨버커키에 한국인 젊은 여자들이 집단 수감돼 있다”는 소문을 우연히 들었을 때 기자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앨버커키가 어디지?’라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름조차 낯선 미국 남부 뉴멕시코 주의 한 작은 도시에 왜 한국 여성들이 갇혀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곧 풀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이민세관국(ICE)이 8월 15일 중무장한 경찰 1000명을 동원해 워싱턴 뉴욕 등지에서 펼친 한국인 성매매 업소 단속 작전(Operation Cold Comport) 때 체포된 여성들이 수용돼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적발된 70여 명의 한국인 여성 가운데 대부분은 보석 등으로 풀려났지만, 풀려나지 못한 19명 중 15명은 집단 압송돼 갇혀 있다.



앨버커키는 뉴멕시코 주의 황량한 벌판 가운데 세워진 인구 50여만 명의 도시. 앨버커키 수용소는 국토안보부가 운영하는 미국 내 대표적인 불법체류자 집단 수용시설로 80여 개국 600여 명이 수용돼 있다.

18일(현지 시간) 찾아간 앨버커키 수용소는 예상과 달리 도심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지만 보안이나 경비는 여느 교도소와 다를 바 없이 삼엄했다. 아마도 도시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일 듯싶은 이 건물 4층에 한국인 여성들이 단체로 구금돼 있었다.

“손발이 묶인 채 비행기를 타고 23시간이나 걸려 왔어요. 생리대를 갈아야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어요.”

한 방에 3, 4명씩 수용돼 있다 홀(Hall)로 나온 한국 여인들은 불평과 하소연을 쏟아냈다. 함께 간 권태면 워싱턴 총영사가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갑자기 총을 든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운동복 바람으로 끌려왔어요. 어떤 호텔 같은 곳에서 1주일 수용돼 있다 이곳으로 압송됐어요. 소지품도 하나도 못 챙겼어요. 가지고 있던 돈은 다 압수당했고요.”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는 다들 비슷했다. 이들은 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된 걸까.

“한국에선 20대 초중반이 넘으면 (유흥업소에서) 돈 벌기 힘들어요. 하지만 미국에선 동양여자 나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한 달에 2만, 3만 달러는 쉽게 번다고 하기에….”

A(35) 씨는 우연히 알게 된 브로커의 말을 듣고 1년여 전 멕시코행 비행기를 탔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와 맞닿아 있는 멕시코의 국경도시 티후아나로 안내됐고 그곳 민박집에서 며칠 머물다 뒷좌석 밑을 파낸 차에 숨어서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는 데 1만 달러를 줬다. 민박집에는 중국 동포 여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큰돈 번다” 春夢… 깨어보니 철창 惡夢

성매매 혐의로 적발된 한국 여성이 수감돼 있는 미국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 수용소 입구. 미 국토안보부 소속의 교정시설(correctional center)이다. 앨버커키=이기홍 특파원



“여기서 수입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고 천차만별이에요. 착취나 감금은 없었지만 밀입국했다는 사실 때문에 항상 불안했어요.”


자녀를 조기 유학시키기 위해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된 중년 여인도 있었다. B(40) 씨는 중학교 1학년인 딸을 미국에서 공부시키려고 올 5월 먼저 관광비자로 미국에 왔다. 유학센터를 알아보고 유학 수속을 밟았는데 1년에 3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올 때까지 비용을 조금이나마 마련해 보려고….” B 씨는 후회의 한숨을 내쉬었다.


15명 중 한 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김모(58) 씨는 마사지 업소에서 아가씨들 빨래나 밥을 해주다가 잡혀 왔다. 성매매를 한 것은 아니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이 탄로 났기 때문. 수용소로 압송된 직후 재판장에 갔다 오던 김 씨는 “갑자기 다리가 붓는다”며 주저앉았다. 배가 부르고 얼굴이 노래졌다.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김 씨는 말기암 판정을 받았고 1주일 후 가족들의 얼굴도 못 본 채 외로이 숨을 거뒀다.


폴 하버라잉 수용소 부소장은 중환자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통을 호소한 직후 병원으로 옮겼고 최선을 다해 치료했다”며 “김 씨가 가족들에게 알리기를 거부해 결국 직원들이 김 씨의 사물을 뒤져 가족들에게 연락했지만 이미 숨지고 난 뒤였다”고 밝혔다.


역시 성매매 업소에서 밥과 빨래 같은 허드렛일을 해주다 잡혀 온 C(62) 씨는 김 씨 이야기를 전해 주며 한없이 눈시울을 적셨다. 오래전 이혼한 C 씨는 미국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5년 전 관광비자로 미국에 와서 불법체류를 해왔다. 방 한 칸을 얻어 아들과 살았지만 그나마도 마사지 업소에서 먹고 자는 생활이어서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집에 가지 못하는 ‘죄수 같은 나날’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감자 가운데 미국에 오기 전에도 성매매 관련 일을 한 경우는 3명이 확인됐다. 다른 여성들은 대부분 “미국 와서 합법적인 직업을 갖기가 어렵다 보니 이 생활로 빠져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전제한 뒤 한국에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여성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고 했다. 23일로 시행 2년째를 맞은 성매매특별법의 ‘풍선 효과’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국에 온 뒤 업주에게 여권을 빼앗겼다는 여성은 1명이었고, 감금 및 폭행 등을 당했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는 없었다. 한 달 수입은 천차만별이지만 월 2000만 원 수입을 올린 적이 있다는 여성도 있었다. 한국의 가족들에게 상당액을 송금해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나라 망신시킨다고 욕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나라가 가난 구제를 못해줬잖아요? 한국 경제 엉망일 때 여기 있는 여자들이 한 달에 1만∼2만 달러씩 송금했어요.”(D 씨·35세)


한국에서 장사를 하다 문제가 생겨 혼자 미국에 왔으나 올 추석엔 꼭 돌아가고 싶어 비행기 표 값이라도 마련하려고 성매매 업소에 발을 디뎠다는 E(38) 씨는 “이번 추석 때 시부모 제사는 내 손으로 올리겠다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약속했는데…”라며 울먹였다.


F(40) 씨는 그동안 번 돈 가운데 3만 달러를 주변에 빌려주고 계를 부었는데 강제 출국당하면 찾을 길이 막막해진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불법 체류하며 이런 업종에 몸담은 게 이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인지 몰랐어요.”


‘고(高)소득’에의 헛된 꿈이 깨진 채 한국으로 추방되거나 출국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여인들의 한숨이 수용소 안을 가득 메우는 듯했다.
donga A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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